크립토애셋의 폭발적인 거래량을 보면서 “한국 사람은 원래 투기적이야.”, “도박을 좋아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KOSPI200선물, 옵션이 한때 전세계 파생상품 거래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할 때도 있었습니다. 작년 비트코인을 위시한 크립토애셋의 가격이 폭등하였을 때에도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해외 마켓에 비해 특정 크립토애셋의 가격이 3-40%까지 높게 거래되기도 하였으니 비정상적인 현상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해보았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그렇게 투기적인가?’ 냉정히 저 자신을 돌아보면 그렇게 투기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의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볼 때도 김치프리미엄이라는 것을 만들 정도로 투기적으로 보이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기관들 중심의 시장인 대한민국 채권시장을 둘러보면 지난 십수년간 특별히 투기성이 높아 보인 현상이 기억나지 않는군요. 주식시장의 특정 섹터들이 간혹 그런 면모를 보여오긴 했습니다. 최근의 경우 바이오 섹터가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보여지는 현상은 “한국사람은 투기적이야”라고 느낄 법하지만, 왜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태생적으로 한국사람들이 투기적일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이런 저런 한국의 투자자들이 투기적인 이유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 뒤 내린 저의 결론은 아래와 같습니다.
- 한국 국민들의 평균적인 수준이 높습니다.
사실 해외의 경우 계좌를 만드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투기를 하려고해도 계좌도 만들고 뭘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들은 전세계에서 평균 지능지수(IQ)가 가장 높은 나라이며, 문맹률도 거의 0%에 가까운 나라입니다. 대학진학률도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지요. 투자든 투기든 최소한의 무언가를 알아야 할 터인데, 대한민국 국민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어느정도 수준이상 아는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 초고속 인터넷망이 완벽하게 보급되어 있습니다.
주식이든, 선물거래이든, 크립토애셋이든 웹이나 모바일로 접속하여 주문을 내야합니다. 인구가 꽤나 되는 나라일지라도 인터넷망이 제대로 안되어 있는 경우 투기에 참여하기도 어렵습니다. 초고속 인터넷망은 언제든지 투자든, 투기든 쉽게 동참할 수 있게 해줍니다.
- 대한민국에서는 노력하는 사람이 여전히 삶의 위협을 받기도 합니다.
사실 노력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그에 맞는 보상을 합당하게 받는다는 믿음이 지배하는 사회라면 굳이 투기적으로 행동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러나 IMF 이후의 대한민국 문화를 보면 “내가 열심히 해도 안되는 경우가 많더라.”, “평생 직장이라는 거 없더라.”, “물려받은 거 없으면 답이 없더라.”,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기업, 공무원, 교사를 하고 퇴직해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더라.” 심지어, “변호사, 의사를 해도 먹고 사는데 위협받는 경우도 많더라.”
이런 불안이 조장된 속에 ‘어떻게 해서든 돈 되는 일에 전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시대가 되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금융시장에서의 이런 투기적 현상을 국가적 차원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한민국 냄비근성’ 이라는 표현의 연장선상에 있는 ‘쏠림 현상’이라고 본다면, 뉴욕에서 활동중인 정신분석가 권혜경씨는 그의 저작 [감정조절]에서 “냄비근성은 사회안전망 부재에 따라 감정조절이 안되는 사회 병리적 현상”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즉, 불안정한 사회구조에서 투기성이 잉태된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한국 사람은 투기성이 높다.” 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 한켠이 아립니다. 제가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직접해결하는데는 한계가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금융인으로써 합리적 투자 문화 정착에 대한 중대한 기여를 해야한다는 직업적인 소명감은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